음악

2014년 7월 13일 오전 09:05

tiger471 2014. 7. 13. 11:21



[詩人의 음악 읽기] 영화음악·재즈·클래식 넘나든 재주꾼



앙드레 프레빈과 정경화가 협연한 차이콥스키·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촌닭’같은 자켓 사진으로도 유명한 이 음반은 동곡 최고의 연주로 꼽힌다


지휘자 앙드레 프레빈



스캔들은 유명세다. 하필 유명인이 사고를 쳐서 입담에 오르는 것이 아니다. 목숨 붙어 있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모든 인간이 언젠가는 사고를 저지르게 마련인데 대부분 은폐되고 지나간다. 스캔들은 모두에게 공평한 확률 가운데 유명이라는 ‘죄’ 때문에 부풀려 제공되는 대중의 풍선껌 같은 것이다. 스캔들 당사자라면 억울해 할 일도 아니다. 일종의 비용이니까.

재주꾼 지휘자 앙드레 프레빈을 떠올리는데 그의 음악보다 다섯 번에 걸친 결혼사가 먼저 생각난다. 가장 나중에 결혼한 34세 연하의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와 해로할 줄 알았는데 결국 4년만에 이혼하고 말았다. 이혼·재혼 반복하는 사람을 그리 나쁘게 보지 않는다. 본부인 놓아두고 몰래 연애할 바에야 번거로워도 이혼을 치르고 새 결혼을 하는 것이 떳떳해 보이니까.

앙드레 프레빈의 다혼행각 속에 한국인이 인상 깊게 기억할 일이 두 차례나 있다. 프레빈의 세 번째 부인인 여배우 미아 패로가 이를 부득부득 갈며 인터뷰를 한다. “제가 그렇게 비쩍 마른 동양여자에게 남편을 빼앗길 줄 아세요?” 그 ‘비쩍 마른 동양여자’란 우리가 사랑하는, 개인적으로 깊은 존경의 염을 품고 있는 정경화다. 그 일이 경과하던 즈음 잡지 ‘음악동아’에 실렸던 기사를 기억한다. 가슴 아픈 사랑을 뒤로 한 채 어떤 섬으로 은둔해 버렸던 정경화의 슬픈 사진. 당사자에게 죄송한 말이지만, 비련을 가득 품고 있는 그녀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우리의 바이올리니스트는 정말 품위 있는 태도로 상처를 추스르고 있었다.

이를 부득부득 갈던 미아 패로였지만 자신도 사고를 친다. 남편을 놔둔 채 어디가 좋았는지 정말로 비쩍 마른 영화감독 우디 앨런과 동거를 시작한다. 그때 데려간 딸이 유명한 순이 프레빈, 그러니까 앙드레 프레빈과 살 때 입양한 한국계 소녀다. 잘 알려진 대로 우디 앨런은 마누라 저버리고 양녀 ‘순이’와 결혼해 버리고…. 뭐 뒤죽박죽인데 서양사람들 누구 좋아하면 앞뒤 안 가리는 것 어디 한 두 번 보나.

스캔들 말고 음악으로 가보자. 아마도 지휘자 가운데 가장 다채로운 인생 행보를 보였을 앙드레 프레빈의 레코딩 가운데 단 하나 최상을 꼽는다면? 당연히 그가 클래식 음악계에 속했을 때 가장 빛나는 활동을 함께 한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연주를 꼽아야 한다. 참 많은 음반이 있고 베스트셀러도 숱하게 많다. 그래도 단 하나만 꼽는다면? 절대로 안으로 굽은 팔의 작용이 아니다. 앙드레 프레빈과 런던심포니가 함께 연주한 음반 가운데 최고 절창은 1970년에 출시된 약관 22세 정경화의 데뷔음반(사진)을 꼽는다. 그 안에 차이콥스키와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들어있다. ‘동양의 마녀’ 운운하는 카피가 따라붙는데 기분 나쁘지 않은 수식이다.

마녀 정경화는 첫째 우수가 뭔지를, 둘째 젊은 에너지를 토대로 쭈뼛쭈뼛할 정도의 확산성을 보여준다. 협주곡 음반들에는 지휘자와 협주자의 기 싸움이 들어있다. 프레빈은 이 음반에서 신진 바이올리니스트의 기량이 돋보이도록 배려를 한 것 같은데 그래도 옥신각신 힘자랑이 느껴진다. 통상 요절한 지네트 느뵈와 정경화 연주를 비교하는데 시벨리우스 협주곡 연주에서 이 두 걸출한 여류를 능가할 음반을 찾기 힘들다.



젊은 시절의 앙드레 프레빈은 귀공자풍이었다.

앙드레 프레빈의 출발은 영화음악이었다. 네 번이나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다. 1964년작 ‘마이 페어 레이디’는 그쪽 분야 스탠더드로 지금도 알아준다. 정통 재즈 뮤지션으로도 긴 활동 이력이 있다. 1945년부터 67년까지 수십 종의 음반을 냈고, 지휘계에서 별 볼일 없어진 1990년대 10여 년간 출시한 음반들은 고급스러운 재즈 트리오 연주로 찬탄을 자아낸다. 레너드 번스타인 다음으로 TV방송을 통한 대중음악 강좌로 날리기도 했다.

인간은 공평하게 태어나지 않는다는 산 증인이 앙드레 프레빈이다. 영화음악·재즈· 클래식 음악계를 넘나들었지만 매번 각 분야 정상에 섰다. ‘저속한 할리우드 혈통’이라는 조롱을 뒤로 하고 ‘자 한번 들어봐’ 하듯이 지휘대에서 자유롭다. 그의 지휘가 궁금하다면 리허설 자료영상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단원들을 자주 웃기며 매우 편안해 보이는데 강조할 대목에서는 좋아 죽겠다는 듯한 몸짓을 한다. 팀을 이끄는 능력이다. 1996년 쾰른에서 피차 나이 들어 정경화와 함께 한 브람스 협주곡 콘서트 영상이 있다. 서주부에서 정경화와 눈이 마주친 프레빈이 픽 웃는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이날 정경화의 표정과 몸동작이 유난히 커 보였다. 이런 모습 참 좋다. 모든 것은 세월과 함께 녹아들어 지나가는 것이다.

꼽아보니 앙드레 프레빈도 팔십대 중반이다. 고고한 순음악주의적 태도가 지배하던 시절에 그가 힘겹게 뛰어넘어야 했을 장벽들이 떠올라 문득 애틋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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