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2014년 7월 6일 오후 12:11

tiger471 2014. 7. 6. 12:19

멘델스존의 행복, 모차르트의 슬픔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Op.64


http://youtu.be/o1dBg__wsuo
바이올린 힐러리 한,
파보 예르비 지휘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교향악단

멘델스존은 모차르트와 더불어 음악사의 가장 뛰어난 천재로 꼽힌다. 두 사람의 음악은 듣는 이를 괴롭히지 않으며 물 흐르듯 유려하게 흐른다는 점이 비슷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음악은 무척 대조적이다. 모차르트는 행복한 느낌을 노래할 때조차 언제나 바탕에 슬픔이 배어 있다. 반대로 멘델스존의 음악은 슬픔과 애수를 노래할 때조차 언제나 행복하다. 이 차이는 도대체 뭘까?

멘델스존의 음악 중 가장 유명한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를 들어보자. 모든 바이올린 협주곡 중 가장 귀에 익은 선율이다. 베토벤, 브람스의 작품과 함께 ‘3대 바이올린 협주곡’의 하나로 꼽히는 이 곡은 우울한 마음에 따뜻한 위안을 준다. 미국의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과 에스토니아 출신의 지휘자 파보 예르비가 호흡을 맞춘 훌륭한 연주다.

바이올린이 첫 주제를 멜랑콜릭하게 노래하며 시작한다. 오케스트라가 주제를 받아서 격정을 더한다. 분위기가 진정되면 3분 지점에서 목관이 제2주제를 아름답게 연주한다. 바이올린이 화답하여 격정적으로 노래하면 4분 30초 지점부터 제1주제가 다시 등장하는데, 이번에는 생글생글 웃음 짓듯 명랑한 장조로 바뀌어 있다.

1악장이 끝나고 휴식없이 이어지는 2악장(13:20부터)은 따뜻하고 아름답다. 제2주제는 다시 애조를 띄지만 비단처럼 결이 곱다. 바이올린의 애수 띈 독백(20:50부터)에 이어 금관의 팡파레와 바이올린의 애교스런 대답으로 시작하는 3악장은 행복감으로 찬란하게 빛난다. 멘델스존의 곡들은 모두 우아하고 부드럽다. 그의 열정은 도를 지나치는 법이 없고, 언제나 온유한 감정을 노래한다. 이 바이올린 협주곡에 표현된 정열과 멜랑콜리도 달콤하고 따뜻하다. E단조의 슬픈 조성이지만 듣는 이는 행복감을 느낀다.

 

▲  모차르트(왼쪽, 1756~1791)와 멘델스존(1809~1847). 모차르트는 아름다움 속에 슬픔을

감추고 있는 반면 멘델스존은 슬픔과 애수를 노래할 때조차 행복한 느낌이다.

멘델스존은 모차르트의 겉과 속을 뒤집어 놓은 것 같다. 이 차이는 왜 생겼을까

 

▲ 모차르트(왼쪽, 1756~1791)와 멘델스존(1809~1847). 모차르트는 아름다움 속에 슬픔을 감추고 있는 반면 멘델스존은 슬픔과 애수를 노래할 때조차 행복한 느낌이다. 멘델스존은 모차르트의 겉과 속을 뒤집어 놓은 것 같다. 이 차이는 왜 생겼을까?

이번엔 모차르트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다운 곡인 클라리넷 협주곡의 느린 악장을 들어 보자. 로버트 레드포드와 메릴 스트립이 주연한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시드니 폴락 감독, 1985)의 주제곡이다. 대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두 사람의 아름다운 사랑은 모차르트의 음악이 있었기에 빛을 더할 수 있었다.


http://youtu.be/Rjzf_cWzlp8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중 2악장 아다지오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 가장 슬프다는 역설을 얘기할 때 꼭 이 곡이 떠오른다. 사랑하는 세상과 이별하며 아름다운 순간들을 회상하지만, 엉엉 울거나 소동을 피우지 않는다. 고요히 미소 짓지만, 슬픈 마음이 눈빛에 서려있다. 이 슬픔이야말로 모차르트의 맨 얼굴이 아니었을까. 1778년 마지막날 편지에 섰듯, 그의 삶은 “많은 슬픔, 약간의 즐거움, 그리고 몇 가지 참을 수 없는 일들”로 이뤄져 있었다.

다시 펠릭스 멘델스존으로 돌아가 보자. 그의 이름 펠릭스(Felix)부터 ‘행복’이란 단어와 어원이 같다. 그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슬픔과 애수를 노래하고 있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바탕에 깔린 색채는 따뜻하고 행복하다. 이러한 행복한 정서를 그의 삶과 연결지어 설명하는 것은 매우 거칠고 조잡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유복한 가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는 사실이 이 특징을 결정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그만의 독특한 개성이었을 것이다. 이 곡이 초연된 1845년, 그는 명성의 정점에 있었지만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여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천재로 이름을 날렸지만 외로웠고 피곤했다. 쉬고 싶다고 가족들에게 수없이 하소연했지만 쏟아지는 일을 외면할 수 없었다. 2년 후, 1847년 5월 누나 파니가 세상을 뜨자 펠릭스는 삶의 의지를 잃고 무너져 내려 같은 해 11월 숨을 거둔다.

38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행복한 정서는 변함이 없었다. 30살에 작곡한 피아노 트리오 D단조를 들어도 이 점은 확인할 수 있다. 멘델스존의 D단조는 불안과 공포를 자아낸다는 점에서 모차르트의 D단조를 닮았다. 격정적인 첫 주제가 되풀이되고 2분 10초부터 첼로가 연주하는 제2주제는 부드럽고 달콤하다. 멘델스존 음악의 기본 정서인 행복감이 드러나는 것이다. 4악장(21분부터)도 마찬가지다. 긴장된 첫 부분에 이어지는 첼로의 노래(24:50부터)는 한없이 우아하고 사랑스럽다.


http://youtu.be/jZqPReE9uS0


슈만은 멘델스존을 가리켜 “19세기의 모차르트, 가장 뛰어난 음악가, 시대의 모순을 가장 명료하게 꿰뚫어보고 그것과 최초로 화해한 사람”이라고 했다. 앞부분은 맞는 말이지만, 뒷부분을 “시대의 모순과 화해했다”고 읽으면 갸우뚱하게 된다. 시대의 모순을 행복한 주관으로 그냥 지워버린 게 아닐까?

모차르트는 앞뒤 가리지 않고 시대의 모순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봉건 영주 콜로레도의 하인이 되기를 거부하고 자유음악가로 홀로 선 그의 마지막 10년은 멘델스존처럼 ‘시대의 모순’과 화해할 틈을 허용하지 않았다. 모차르트는 봉건시대와 결별했으면서도 기득권층의 인정을 받아야만 살 수 있었다. 그의 일생은 불안하고 괴로웠고, 두려웠다. 멘델스존의 트리오처럼 D단조로 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은 고통, 불안, 공포를 극대화하여 존재의 심연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언뜻언뜻 햇살처럼 비치는 행복의 흔적조차 없다.

멘델스존과 모차르트, 두 사람의 생애를 통해 음악의 특징을 비교할 수는 없다. 어차피 다른 시대를 살았기 때문이다. 모차르트에서 싹튼 개인의 자유는 베토벤에 이르러 승리하기 시작했고, 멘델스존의 낭만시대에 활짝 꽃을 피웠다. 1845년에 발표된 이 바이올린 협주곡은 낭만시대 협주곡의 한 떨기 향기로운 꽃이다. 열정과 애수로 가득 차 있지만 우아하게 미소 짓는 멘델스존의 얼굴이 보인다. 멘델스존의 행복한 미소는 봉건 시대의 끝자락을 힘겹게 살아 낸 모차르트에게 빚진 바가 아주 없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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