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2014년 7월 13일 오전 08:57

tiger471 2014. 7. 13. 09:05

17살 천재 멘델스존의 사랑과 환상 
<한여름 밤의 꿈> 서곡

온유하고 달콤한 멘델스존(1809~1847)의 음악, 그 중 가장 귀에 익은 곡은 <결혼 행진곡>일 것이다. 결혼식장에서 흔히 듣는 피아노 연주도 좋지만, 두 남녀의 결혼을 제대로 축하하려면 화려한 오케스트라 연주가 나을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토대로 1843년에 작곡한 극음악 <한여름 밤의 꿈>에 나온다.


멘델스존 <한여름 밤의 꿈> 중 ‘결혼행진곡’
http://youtu.be/z0wmzoHd6yo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은 고대 아테네가 무대다. 스토리가 비슷한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극이지만, <한여름 밤의 꿈>은 희극이다. 서로 사랑하는 헤르미아와 뤼산드로스는 부모의 반대를 피해 숲속으로 도망간다. 요정의 세계, 귀족의 세계, 서민의 세계가 복잡하게 얽히며 꿈과 환상이 펼쳐지고, 사랑하는 세 쌍의 남녀가 결혼하는 것으로 끝난다.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세계관이 지나치게 감상적이라고 생각하여, <한여름 밤의 꿈>을 통해 이성과 감성, 비극과 희극이 조화를 이루는 성숙한 세계를 그리고자 했다.


▲ <한여름 밤의 꿈> 중 ‘요정 오베론과 티타니아의 논쟁’ 장면, 조셉 노엘 파톤 그림.

멘델스존이 <한여름 밤의 꿈>을 처음 읽은 것은 17살 때인 1826년이었다. 신비롭고 환상적인 희곡에 매료된 멘델스존은 즉시 멋진 서곡을 작곡했다. 17년 뒤인 1843년, 프러시아의 빌헬름 4세는 연극 <한여름 밤의 꿈> 공연 때 연주할 극음악을 만들어 달라고 멘델스존에게 요청한다. 서곡, 요정의 행진, 결혼 행진곡, 광대의 춤 등 12곡으로 이뤄진 이 음악은 무려 17년 걸려서 완성한 셈이다. 17살 때 작곡한 서곡을 그대로 사용해서 34살에 완성했기 때문이다. 이 서곡은 멘델스존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한여름 밤의 꿈>에 나오는 다른 곡들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을 뿐 아니라, 멘델스존의 작품 중 가장 사랑받는 곡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밤,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 서곡을 감상해 보자. 꿈꾸는 듯한 목관의 화음 네 개가 펼쳐지고, 요정들이 바삐 날갯짓하며 여름밤의 환상을 속삭인다.




멘델스존 <한여름 밤의 꿈> 서곡
http://youtu.be/qh50Pqp92Tg
(오토 클렘페러 지휘 필하모니아 관현악단)

어린 시절, 멘델스존은 모차르트를 능가하는 천재로 평가됐다. <한여름 밤의 꿈> 서곡은 17살 모차르트보다 뛰어났던 17살 멘델스존의 걸작이다. 두 천재의 어린 시절을 목격한 괴테는 말했다. “멘델스존이 어린 나이에 이룬 성취를 당시의 모차르트와 비교하면, 다 자란 어른의 교양 있는 대화를 어린아이의 혀짤배기 소리에 비교하는 것과 같네.” 그 자리에 있던 음악가들도 이 평가에 만장일치로 동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멘델스존은 죽을 때까지 정체된 천재였던 반면 모차르트는 평생 공부하며 발전한 천재였다는 결론이 된다. 모차르트는 G단조로 된 교향곡을 두 곡 썼는데, 17살 때인 1773년에 쓴 K.183을 ‘작은 G단조’, 32살 때인 1788년에 쓴 K.550을 ‘큰 G단조’라고 부른다. 두 곡 모두 훌륭하지만, 나중에 쓴 게 곡의 규모나 정서의 깊이에서 훨씬 뛰어난 걸작이다.

두 개의 G단조 교향곡 사이에 놓인 15년 동안 모차르트는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반 슈비텐 남작에게서 빌린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악보를 열심히 연구했다. 바흐의 푸가를 현악사중주곡으로 편곡했을 뿐 아니라 직접 푸가를 작곡했다. 바흐 푸가의 영향은 ‘큰 G단조’ 교향곡 곳곳에 자취를 남겼다. 이 기간에 모차르트는 <후궁 탈출>, <피가로의 결혼>, <돈조반니> 등 거대한 오페라를 작곡하며 사랑과 갈등, 용서와 화해, 투쟁과 파국 등 인간 본성의 깊고 섬세한 측면을 탐구했다. 음악 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꾸준한 성찰이 있었기에 G단조 교향곡 K.550의 비극적 서정미를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기간의 한복판인 1781년, 모차르트가 스스로 봉건 질서를 박차고 나와서 천재의 예술혼을 해방시켰다는 점이었다. 천재의 비결은 끝없이 배우고, 자기 것으로 소화하고, 새로운 걸 창조하는 열정 아닐까? 무한히 샘솟는 모차르트의 생산력은 지칠 줄 모르는 목마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멘델스존도 물론 다사다난한 삶을 살았다. 유복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천재성을 인정받았고, 10대에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을 완전히 소화하여 두각을 나타냈고, 유럽 전역을 수없이 여행했다. 최초의 근대적 지휘자로 활약한 그는 20살 때인 1829년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부활시켜 서양음악사를 새로 쓰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러나 멘델스존의 음악은 시대를 뛰어넘는 웅대한 날갯짓을 보여주지 못했다. 19세기를 주름잡은 리스트, 바그너, 베를리오즈 등 음악의 개혁가들과 거리를 둔 채 보수적 색채를 유지했다.

19세기 산업사회의 천재 멘델스존은 상품으로 끊임없이 소비됐을 뿐, 이 재능을 가꿔나갈 시간과 정신적 여유를 충분히 가질 수 없었다. 어떤 짓궂은 음악가는 “모차르트는 1류 중 최고, 멘델스존은 2류 중 최고”라고 말했는데, 이 말에 동의하든 안 하든 멘델스존이 38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10대의 재능을 뛰어넘지 못한 건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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