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둥이 ‘사드’ 키 162cm… 27년간 갇혔어도 음란행위
사드 후작의 초상화(왼쪽)와 그의 영지였던 프랑스 남부 라코스테 성 앞의 사드 동상
‘사디즘’ 주인공 佛 사드 후작 200주기… 숫자로 보는 그의 삶
사드 후작의 초상화(왼쪽)와 그의 영지였던 프랑스 남부 라코스테 성 앞의 사드 동상. 동아일보DB32일은 역사상 가장 논쟁적 인물 중 하나인 사드 후작(1740∼1814)의 200주기다. 타인에게 고통을 가함으로써 성적 쾌감을 얻는 ‘가학 음란증’을 뜻하는 사디즘이란 단어에 가문의 이름을 새긴 그에게도 정식 이름이 있다. 도나시앵 알퐁스 드 사드.
백작 아들로 태어나 후작 지위까지 얻었던 그는 사후 100년이 넘도록 금기와 저주의 대상이었다. 100년 뒤엔 초현실주의자들로부터 ‘무한한 자유의 사도’이자 ‘역사상 최고의 반항아’란 찬사를 받으며 부활했다. 다시 100년이 지난 지금은 계몽주의의 ‘가장 어두운 자식’으로 평가받는다. 사드에 대한 상식을 숫자와 개념으로 재구성했다.
[11] 사드가 감옥에서 보낸 햇수. 23세에 결혼한 직후부터 소소한 성적 일탈행위로 가벼운 옥살이를 하던 그는 32세 때 독살 시도(실제론 최음제를 몰래 먹인 것) 및 남색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4년여 도피 끝에 서른일곱에 체포된 뒤 사형은 면했지만 5년 넘게 옥살이를 했다.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풀려나 잠시 혁명위원으로 활동하다 1793년 반혁명 혐의로 다시 사형 선고를 받는다. 처형 직전 사형을 면하고 1년여 옥살이를 한 뒤 풀려났다가 1801년엔 외설작가로 체포됐다. 실제의 사드는 작품 속 끔찍한 범죄를 범하진 않았고 사형제에도 반대했다.
[27] 정식 수감생활은 11년이지만 정신병원에 갇혀 지낸 세월을 더하면 27년에 이른다. 이 희대의 난봉꾼은 거의 반평생을 갇혀 지낸 셈이다. 프랑스혁명 직전 바스티유 감옥에서 “간수들이 죄수를 무차별 학살한다”며 군중을 선동하다 파리 근교 샤랑통 정신병원으로 이감됐다. 1801년 재수감된 그는 1804년 샤랑통으로 옮겨져 죽을 때까지 갇혀 지냈다.
[74] 사드의 말년을 그린 영화 ‘퀼스’(2000년)에선 사드가 병원에 불을 지르고 타죽은 것으로 그려졌지만 실제론 74세까지 천수를 누렸다. 그는 자기 무덤 위에 여러 과실수를 심어 무덤의 흔적조차 없애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그대로 실행됐다. 하지만 “사람들의 뇌리로부터 나에 대한 기억이 깨끗이 사라지는 게 더없이 기쁠 따름”이라는 유언만큼은 지켜지지 못했다.
[120] 대표작 ‘소돔의 120일’은 실제 여러 장의 종이를 이어 붙인 120cm짜리 두루마리였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을 묘사한 이 책은 37일 만에 쓰여 전체 4부 중 1부만 완성됐고 나머진 핵심 줄거리만 적힌 미완성작. 바스티유 감옥 습격 때 유실된 줄 알았던 이 두루마리는 1904년 발견됐다. 현재 파리 오르세 박물관의 사드 특별전에서 전시 중이다.
[162] 금발에 파란 눈동자로 귀공자풍 외모를 지녔던 사드의 키. 요즘 말로 ‘꼬마’였던 셈. 게다가 오랜 감금생활 중 식도락을 고집해 중년 이후엔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뚱뚱했다.
[6536] 사드가 일기장에 기록한 2년 반의 항문수음 횟수. 그는 30년 가까운 감금생활 속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성적 쾌락을 도모했다. 감옥에서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선 하루에도 여덟 번 이상씩 자위행위를 했다고 한다. 아내를 통해 밀반입한 ‘딜도’(남성 성기 대용물)를 통한 항문수음이었다. 연구자들은 그가 전립샘비대증으로 불감증에 시달렸다고 분석한다.
[사디즘] 사드 이전엔 사디즘이 없었을까? 당연히 아니다. 1898년 독일 성과학자 리하르트 폰 크라프트에빙이 ‘성적 사이코패스’란 책에서 19세기 오스트리아 작가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1836∼1895)의 이름을 딴 마조히즘(피학 음란증)이란 용어와 대조적 증세에 사디즘이란 말을 처음 사용하면서 일약 유명해졌을 뿐이다.
[리베르탱] 원래는 ‘무신론적 자유사상가’를 뜻했으나 18세기 많은 재산을 토대로 방탕한 생활을 하는 귀족을 뜻하게 됐다. 당시엔 사드 말고도 악명 높은 리베르탱이 많았다. 흉포, 잔인, 방탕 삼매를 추구한 샤롤레 공작(1700∼1760)이 대표적. 1804년 사드의 정신병원행이 결정될 때 ‘리베르탱 정신이상 증세’도 새 병명으로 추가됐다.
[고립주의] 사드는 인간을 기계와 동일시하는 유물론자였고 스스로 창안한 ‘고립주의(isolisme)’자였다. 고립주의란 이 세상 모든 존재가 서로 고립된 상태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은 아무리 극심한 것이라도 무의미하지만 나의 쾌락은 아무리 미미해도 중차대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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