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2013년 8월 8일 오전 05:18

tiger471 2013. 8. 8. 05:21


공연장한나 “활 대신 지휘봉 잡은 일 단 한번도 후회 안 했다”

ㆍ내달 카타르 필하모닉 음악감독 취임

당분간 첼로를 연주하는 장한나(31)의 모습을 볼 수 없을 성싶다. 지난 6일 낮, 서울 시내의 한 호텔에서 만난 장한나는 “당분간 지휘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첼로는 선별적으로만 연주하겠다”고 덧붙였지만, 그 ‘선별적 연주’조차도 향후 몇년간의 계획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없다. 대신 지휘자 장한나의 행보가 본격적인 궤도에 들어선 모양새다. 오는 9월 카타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정식 취임하는 것과 더불어 노르웨이 트론드헤임 심포니의 수석 객원지휘자로도 취임한다. 뿐만 아니라 독일의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서독일 방송교향악단 등 세계적 명성의 오케스트라와도 지휘 일정이 속속 잡힌 상태다. 2007년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다국적 청소년들로 이뤄진 연합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지휘자로 데뷔한 이후 6년 만에 이뤄낸 성과다.

첼리스트에서 지휘자로의 연착륙에 성공한 장한나(31)가 1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자신의 ‘지휘 친정’이나 다름없는 성남아트센터 ‘앱솔루트 클래식’에서 다시금 지휘봉을 들기 위해서다. 그는 “첼리스트의 한계를 뛰어넘고 싶어 지휘를 택했다”며 “아직 지휘자로서의 경력은 미미하지만 ‘진심은 통한다’는 일념으로 지휘에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휘자가 음악에 대한 사랑을 진심으로 보여주면 단원들은 그에 보답한다”고도 했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같은 세계적 오케스트라에서 지휘봉을 드는 것이 두렵진 않은가?”라는 질문에도 “전혀!”라며 손사래를 쳤다. “음악을 믿고 가는 거죠. 저는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을 위해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 때문에 지휘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야 단원들도 저를 인정해요. 괜히 인간적으로 보이려는 제스처를 취한다거나 정치적으로 다가서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오죠.”


지휘자로서 본격 행보를 보이는 장한나는 “첼리스트로서의 한계를 넘어 더 넓은

음악의 세계를 꿈꾸었다”고 고백했다.



▲ 6년 만에 세계적 오케스트라들 앞에 당당히
“두렵지 않아요, 음악을 믿고 가는 거니까”
17일부터 성남 ‘앱솔루트 클래식’ 무대 올라


- 다음달 21일 카타르 필하모닉의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취임연주를 한다. 카타르 필하모닉은 어떤 오케스트라인가.

“카타르 왕실에서 후원하는 오케스트라인데 2007년 창단됐다. 그동안 두 명의 지휘자가 거쳐갔다. 내가 세번째 상임지휘자다. 치열한 오디션을 통과한 106명의 단원들로 이뤄져 있다. 단원들의 출신 국가가 26개국이다. 한국계도 4명 있다. 중동 국적의 연주자들은 오히려 찾아보기 힘들다. 한데 그동안 거쳐간 두 지휘자가 뚜렷한 리더십을 보여준 것 같지는 않다. 재능과 실력이 출중한 단원들이 많은데도, 오케스트라로서 분명한 존재감을 보여주진 못했다. 다행히 행정감독을 맡고 있는 인물이 독일의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출신이다. 브루크너나 말러의 대편성 교향곡을 연주할 때 독일에서도 최고 수준의 악단에서 객원연주자들을 불러올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가능성이 매우 높은 오케스트라다. 앞으로 내가 할 일은 단원들을 최대한 독려하는 것이다. 나는 1년에 15주, 110일가량 카타르에 머물게 된다.”

- 지휘자로 방향을 바꾸려는 생각은 언제부터 했는가.

“나는 무남독녀다. 엄마는 작곡과 출신이고 아빠는 음악애호가다. 덕분에 서너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다. 음악을 친구로 삼으라는 부모님의 뜻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통 재미가 없었다. 양손을 같이 쓰면서 연주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여섯살 때 엄마가 첼로를 선물하셨는데, 아, 그건 정말 재미있었다. 피아노와 달리 소리를 내가 만들어낸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첼로가 내 삶이 됐다. 지휘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지휘에 필이 꽂힌 건 어느날 갑자기였다. 하버드대에 진학하고 나서였다. 간단히 말해, 더 넓은 음악의 세계로 나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첼로로 연주할 수 있는 레퍼토리가 얼마나 제한적인가. 당시의 나는 그것을 거의 맛본 상태였고, 더 넓은 음악의 세계를 꿈꿀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바로 교향악의 세계였다. 처음에는 독학으로 악보를 공부했다. 그러다 지휘에 대한 열망이 점점 강해졌고 마침내 오늘까지 왔다. 한번도 후회하거나 갈등하지 않았다.”

- 아직도 해보지 않은 첼로 레퍼토리들이 있는 것 같은데…. 예컨대 바흐의 ‘무반주 모음곡’이라든가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5곡, 또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도 아직 안 했고….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그렇다. 좀 남겨 뒀다.”

- 조금 전의 기자간담회에서 지휘자로서의 롤 모델로 여러 거장들을 언급했다. 푸르트벵글러, 스토코프스키, 카라얀, 번스타인, 카를로스 클라이버, 요절한 지휘자 귀도 칸텔리까지. 너무나 많다. 딱 두 사람만 꼽아보자. 왜 그들의 지휘에 감명받았는지도 함께 말해달라.

“음…(한참 생각) 푸르트벵글러의 지휘는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좋다. 탁 쏘는 느낌의 음악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구조와 흐름에서 어떤 막강한 힘을 느끼게 한다. 그의 지휘가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지만, 난 그가 만들어내는 섬세한 소리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아, 그래, 이게 음악이지!’ 하면서 경탄한다. 처음에는 그가 지휘한 브람스 교향곡 3번에 빠졌다. 화산이 터지는 듯한 뜨거운 열정! 게다가 그 열정에는 전혀 가식이 없었다. 그가 지휘한 브루크너의 교향곡들도 정말 좋다. 베토벤 9번 ‘합창’은 말할 것도 없고. 음… 그리고 레너드 번스타인, 크고 화려한 동작 때문에 때때로 비난받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는 정말로 정확한 테크닉을 구사한 지휘자였다. 오버하는 지휘자가 절대 아니었다.”

- 지금까지 여러 음악적 스승들을 만났다.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를 비롯해 지휘자 주세페 시노폴리와 로린 마젤, 또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는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까지. 그중에서도 가장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스승은 누군가.

“(망설임 없이) 미샤 마이스키! 그분이야말로 나의 진정한 스승이다. 아시다시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분 아닌가. 수용소에 갇혔던 적도 있고. 그래선지 인간적 그릇이 굉장히 크다. 생각해봐라. 내가 겨우 열한살이었을 때,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한국의 꼬마한테 무한한 애정을 베풀어줬다. 나에게 집을 빌려주고 연습실도 마련해줬다. 내가 음식을 잘 못 먹으니까 한식 레스토랑을 수소문해 데려가기도 했다. 덕분에 나는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에서 우승할 수 있었다. 우리의 만남은 처음부터 그렇게 순수하고 따뜻했다. 물론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분에게 받아온 음악적 자극도 빼놓을 수 없다. 아무것도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사제 관계! 그것이 나와 미샤 선생을 설명하는 문장이다.”

장한나가 지휘하는 ‘앱솔루트 클래식’은 17일부터 31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와 콘서트홀, 중앙공원 야외공연장 등에서 펼쳐진다.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100여명의 젊은 연주자들이 한달간 땀을 흘려 마련하는 연주회다.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 전주곡’을 시작으로 말러, 라벨, 스트라빈스키, 드보르자크 등의 음악을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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