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 학

2017년 6월 2일 오전 03:09

tiger471 2017. 6. 2. 03:16

27년전 오늘, 한국 최초 인터넷 ‘접속’… “누구든 응답하라” 




1990년 6월 1일 서울 홍릉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길남 교수는 ‘선스팍1’이라 이름 붙인 컴퓨터를 켰다. 부팅이 끝나자 국내 최초의 인터넷망 ‘하나(HANA)망’이 미국 하와이대학 네트워크를 거쳐 인터넷에 연결됐다. 한국 인터넷이 최초로 글로벌 네트워크에 접속된, 한국의 인터넷 시대가 문을 연 순간이었다.

◆ 한국 최초로 전송된 인터넷 메시지는… “누구든 응답하라”


전길남 교수. 

전길남 교수는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인터넷 역사의 시작점을 찍고 대한민국이 오늘날 인터넷 강국으로 도약하는 초석을 놓았다. 전 교수는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기술연구원으로 근무하다 1979년 36살에 정부 초청 과학자로 귀국했다. 산업화에 뒤쳐졌던 한국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고급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 최초의 인터넷 연결은 일상적이고 사소했다. 전 교수의 제자인 박현제 연구원은 “나는 대한민국의 박현제다. 누구라도 이 메일을 보는 사람은 응답하라”는 아시아 최초의 이메일을 인터넷에 띄워보냈다. 곧 이어 “나는 미국 하와이대의 Torben이다. 축하한다. 너는 지금 인터넷에 접속된 것”이라는 답신이 도착했다.


국민일보 DB

이후 국내인터넷은 빠르게 발전했다. 1990년대 중반 한국통신의 KORNET이 구축돼 일반인에게도 상용화됐다. 넥슨, 다음, 네이버 등 주목할 만한 인터넷 벤처들도 출현했다. 1998년에는 두루넷을 필두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가 나왔다.

정부 차원의 노력도 있었다. 정부는 1999년 ‘국민정보화교육종합계획’을 수립해 전국 5700개 초·중·고교에 추가로 LAN을 구축했다. 1999년 국내인터넷 사용자는 이미 1000만명을 돌파했다. 한국은 2000년 광대역인터넷 보급률이 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를 달성한 후 최근까지 상위권을 기록했다.

◆ ‘나’를 주연으로 만든 인터넷




정보는 더 이상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전문가의 영역이었던 콘텐츠 생산과 비평은 이제 모두에게 열려있다. 인터넷 사용자는 누구나 쉽게 원하는 정보를 찾고, 다양한 사회·문화 현상에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시민 기자, 1인 미디어 등이 그 대표적 사례다.

현재 유튜브는 ‘1인 방송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해 인터넷 개인방송 진행자(BJ)들을 대거 끌어 모으고 있다. 2016년 11월 기준 100만 구독자를 넘은 채널은 약 50개, 10만 구독자 이상 채널은 약 600개에 달했다. 유명 BJ 대도서관의 경우 구독자 수가 150만명을 넘는다.

유튜브 자체의 성장세도 두드러진다. 닐슨코리안클릭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유튜브 애플리케이션의 월간 순이용자 수는 2200만명이었다. 인당 월평균 이용 시간은 12시간에 육박했다.


국내 대표적 1인 미디어 플랫폼 홈페이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며 광화문 광장이 촛불로 타오른 배경에도 인터넷이 있었다. 유승민 스토리닷 대표가 소셜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JTBC 태블릿PC 보도 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언급량은 빅데이터 단일 사건 관측 이래 최다였다. 지난해 10월24일부터 11월6일까지 뉴스, 트위터, 블로그, 커뮤니티 557만 3362건을 분석한 결과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 공유가 참여로 이어지면서 민주주의의 외연도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 원하는 것만 보여 줄게… ‘정보의 함정’


지난해 12월 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 장면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다. 자기에게 유리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집하려는 ‘확증편향’ 현상이다.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나온 최모(73·여)씨는 “대통령은 잘못이 하나도 없는데 모두 빨갱이와 언론이 조작한 것”이라고 했다. 최씨는 신문·방송 뉴스보다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가짜 뉴스’를 더 믿고 있었다. 그는 “‘탄핵 정국은 빨갱이들에 의해 조작됐고 만약 문재인이 대통령 되면 북한으로 갈 것’이라는 정보를 봤다”고 말했다.

포털사이트나 소셜미디어 등은 사용자가 클릭한 페이지를 데이터로 기억하고 이와 비슷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한다. 사용자를 꾸준히 유입시키기 위해서다. 자신도 모르게 걸러진 정보 속에서 사용자는 주관적인 생각에 갇힐 위험이 높아진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커뮤니티가 형성되면 극단적인 집단 의견이 생겨나기도 한다. 극우성향 커뮤니티 ‘일간 베스트’는 대표적인 확증편향 사례다.



윤영철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맞는 정보를 우선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데 인터넷에서는 그런 경향이 심해진다”며 “인터넷 환경에선 사용자가 관심 있을 만한 뉴스가 맞춤형으로 제공되는가 하면 정치적 성향이 맞는 사람들끼리 커뮤니티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넷은 다양한 정보를 나누는 소통의 장이지만, 동시에 민주주의의 기본 토대를 위협할 가능성도 품고 있다.

◆ “자신과 다른 의견을 우연히 마주치는 인터넷 환경 필요”



27년 전 오늘, 전문가들은 인터넷이 우리 사회의 발전에 일조할 것을 믿으며 첫 인터넷을 연결시켰다. 인터넷 환경은 1인 미디어부터 극우 성향 커뮤니티까지 빛과 그림자를 모두 안게 됐다.

윤 교수는 “앞으로 인터넷 환경은 다양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예컨대 사용자들이 인터넷에서 자신과 다른 의견을 우연히 마주칠 수 있어야 한다”며 “특히 영향력이 큰 포털사이트들이 다양한 관점의 게시물을 공정하게 배치하도록 하는 제도적 토대가 마련돼야한다”고 말했다.

오프라인 공론장의 역할 회복을 강조하는 의견도 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치와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니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가짜 정보와 편향된 사실에 의존하게 된다”며 “오프라인에서 공론장의 기능을 정상화한다면 온라인 환경의 쏠림 현상들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