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문화

2013년 10월 6일 오전 08:45

tiger471 2013. 10. 6. 08:50


전하, 썩은 간장 드셨사옵니다

니들이 장맛을 알아?

경복궁 장독, 위치 선정 실패
기와 위에 계단식으로 배치
장독에 궁중의 멋은 있지만
그늘 없어 직사광선에 노출

장 잘 담가도 5년에 한 번 '꽝'
그해 날씨에 따라 천차만별
너무 추워도 더워도 곤란
햇볕·바람 잘 들어야 성공

우리는 어떤 장을 먹고 있나
굶는 게 일상이었던 韓民族
맛 따지는 것 자체를 금기시
'시골·토속' 문구 정도에 만족


"이거 바르게 고증된 것인가요? 임금님의 장독대인데?"

경복궁에 장고(醬庫·사진)라는 공간이 있다. 궁중에서 먹는 장을 저장하는 곳, 즉 궁중 장독대이다. 2001년에 발굴되어 2005년에 복원하였다. 지난해부터 이 장고가 가끔씩 일반에게 공개되는데, 그때 가서 보고는 의아한 점이 있어 관계자에게 이렇게 물었던 것이다. 물론 고증은 제대로 되었을 터이다. 조선시대에 그려진 궁궐 그림인 동궐도에 묘사된 장독대도 현재의 장고와 흡사하다. 계단식 장독대인데, 계단의 층마다 장독이 한 줄 또는 두 줄씩 놓여 있다. 장독 사이는 넉넉하다. 바닥은 까만 바닥기와로 깔았다. 장독 주변에 나무나 그늘막은 없다. 궁중의 장독대답게 제법 멋스러워 보이나 과연 장이 맛있게 익을 수 있는 공간인지는 의심스러웠고, 그래서 그 관계자에게 바른 고증인지 물었던 것이다. 그 고증이 맞으니, 내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조선 임금이 맛있는 장을 못 먹었구먼."

장독은 햇볕과 바람이 잘 드는 곳에 두는 것이 원칙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볕이 작열하여서는 아니 된다. 여름 햇볕에 장독 안 온도가 너무 높아지면 장맛을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두고 흔히 "장이 볕에 덴다"고 표현한다. 그래서인지 오래된 민가의 장독대를 보면, 주변 온도를 적절하게 낮추는 전략을 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담장을 두르거나 나무를 심어 적당히 그늘지게 하고 주변에 화초를 심어 지열을 내린다. 요즘의 '현명한' 전통 장류 제조업체들도 강렬한 햇볕을 어떻게든 피한다.


	경복궁 장고(醬庫)



경복궁 장고(醬庫)

뉴시스
이런 것에 비해 조선 임금님의 장독대는 무방비 상태에 있었다 할 것이다. 층계를 지어 장독을 듬성듬성 놓은 데다 나무도 그늘막도 없다. 더욱이 검은 바닥기와는 열을 받아 장독에 그대로 올릴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볕에 장이 상하는 것을 막자면 소금이라도 왕창 넣어야 한다. 공출한 소금이 넉넉하였을 것이니 장독대를 저리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 싶은데, 어떻든 조선의 임금이 맛있는 장을 못 먹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장맛이 한국 음식에서 가장 중요하다. 음식마다 으레 장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공장 장류가 웬만큼 맛을 낸다 하여도 결단코 전통 장류를 버릴 수 없다. 장기 숙성 과정에서 생기는 그 묘한 맛과 냄새는 한국인의 미각에 각인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 음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이 장을 이제 집에서 담그지 않는다. 현대의 생활공간이 장을 담그기에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통 장류도 공장 장류처럼 사서 먹는다. 전통 장류 제조업체들이 전국에서 융성한다. 그 덕에 소비자는 편하게 전통 장류를 사서 먹으면 될 일인데, 실제는 그렇지 못하다. 그 수많은 전통 장류 업체가 제각각으로 자기네 장이 가장 맛있다고 자랑하고 있어 헷갈린다. 여기저기서 전통 장류를 맛보지만 그 맛의 차이를 알 길이 없다.

고가 브랜드 전통 장류와 시골 여행길에 우연히 얻은 어느 시골 할머니의 장류에서 그 어떤 맛 차이를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 까닭은, 전통 장류는 그 맛이 실로 다양하여 '맛있다'는 특정 포인트를 지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왜 그 맛이 실로 다양하냐 하면, 자연이 알아서 맛을 내기 때문이다.


	일러스트
일러스트


전통 장류 담그는 사람들은 늘 이런 말을 한다. "장은 자연의 맛이지요." 장을 한 번이라도 담가본 사람은 다 안다. 한날한시에 쑨 메주인데도 위에 매단 것과 아래에 매단 것이 다르게 뜬다. 곰팡이가 제각각으로 붙는다. 이를 뒤섞어 장을 담가도 똑같은 일이 발생한다. 한날한시에 염도가 똑같은 물에 담근 것이건만 이 장독 저 장독의 장맛이 다 다르다. 장독 위치에 따라 볕을 더 받고 덜 받으며 바람을 더 맞고 덜 맞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 장독의 된장인데도 위와 아래가 그 맛이 다르다. 장맛은 자연이 결정하는 것이다.

장은 자연이 맛을 낸다고 다들 그러면서 장을 파는 것을 보면 그렇지 않다. '명인의 솜씨'를 강조한다. 장독 수백 수천 개가 진열되어 있으면 그게 명인의 솜씨가 보태어진 것이라 하여도 그 장독들에 든 장의 맛이 제각각일 터인데 용기에 담아서 판매하는 장은 다 똑같은 맛을 내는 듯이 포장된다.

"5년에 한 번은 망하지." 장 담그는 일에 진력이 났다 싶은 할머니들도 가끔 이런 말을 한다. 겨울의 이상 기온으로 메주가 망하기도 하고, 또 여름의 이상 기온으로 장이 망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올해는 장맛이 좋지 않습니다. 그러니 싸게 팔겠습니다" 하는 전통 장류 업체를 본 적이 없다.

비교를 하자면, 유럽의 와인이 있다. 와인의 맛도, 물론 사람 솜씨가 일부 관여를 하기는 하지만, 자연이 결정한다. 그해의 기후나 일조량에 의해 포도의 품질이 결정되고 그에 따라 와인의 맛 또한 좌우된다. 한 와이너리의 것이라 하여도 그해 그해 맛이 다르고, 그래서 빈티지에 따라 그 가격이 다르다. 장도 그래야 한다.

한국인은 음식 맛을 잘 모른다. 맛을 분별하며 먹어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한민족 역사에서 배곯는 일을 마감한 것이 기껏 1970년대에 들어서이다. 입에 넣을 만하면 되었지 밥상 앞에서 맛있니 맛없니 하고 앉아있으면 욕먹었다. 그 이후에 출생한 젊은 한국인들은 다소 넉넉하게 먹을거리가 주어지기는 하였으나 저급한 가공식품과 외식 음식으로 입맛이 '오염'되었다. 맛을 모르니 먹을거리를 파는 사람들은 대충 맛을 던져도 된다.

이럴 경우, 맛이 아니라 포장이 중요하다. 전통 먹을거리이면 조선의 왕가를 팔고 양반가의 내림 손맛도 들먹이며 그것도 없으면 '3대째 시골 토속 손맛'을 내민다. 맛을 모르니 다 먹히게 되어 있다.

장고에 다녀와서 이 계통의 몇몇 사람에게 "조선 임금은 맛없는 장을 먹었던 것이 분명해"라고 하였더니 내가 자기네 집안의 음식을 맛없다고 평가한 것인 양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한국의 음식 문화에서 궁중 음식이 항상 강조되다 보니 조선 임금의 일이 곧 자기 일인 듯이 여기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내친김에 "장류에 명인이 필요할까?" 하고 질문을 하였더라면 장금이로부터 이어지는 한국 전통 음식의 맥을 끊으려는 나쁜 사람으로 몰렸을 수도 있다.

농경시대에 집에서 해먹던 음식이 전통 음식이다. 서양에서는 산업화가 서서히 진행되면서 전통 음식이 산업사회에 맞게 적절히 변신하였다. 한국은 번개처럼 산업사회로 진전하였고, 그래서 전통 식품의 생산과 그 소비에 대해 깊이 생각할 틈이 없었다. 전통 식품의 맛은 대체로 자연에 기대고 있다. 공장의 가공식품을 이길 수 있는 힘도 이 자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의 임금이라 하여도 이를 대신해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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