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소식

2013년 7월 22일 오전 07:13

tiger471 2013. 7. 22. 08:38


백악관 기자실에 ‘전설’ 새기고 떠난 헬렌 토머스 Hellen Thomas

ㆍ케네디부터 10명 대통령 취재
ㆍ여성의 벽 허물고 92세로 별세
ㆍ오바마 “그녀 질문엔 항상 긴장”


반세기 동안 백악관 기자실을 출입하며 10명의 미국 대통령을 취재해 ‘백악관 기자실의 전설’로

불리는 헬렌 토머스 기자가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의 자택에서 9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중견 언론인 모임인 그리다이언 클럽은 이날 성명을 통해 “토머스가 다음달 93회 생일을 앞두고

오늘 노환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이날 성명을 내고 “토머스 기자는 여성 언론인의 벽을 허문 진정한 개척자”

라며 “아내 미셸과 나는 토머스의 별세 소식에 슬퍼하고 있다”고 애도했다. 오바마는 또 “토머스

기자는 정치 지도자들의 책임을 추궁하는 냉정한 질문을 통해 민주주의가 가장 잘 구현될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을 가진 인물”이라며 “토머스 기자는 오랜 기자생활을 통해 많은 미국 대통령들을 긴장하도록

만들었다”고 치하했다.


미국 백악관에서 지난 1981년 헬렌 토머스 기자(가운데)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왼쪽)을 인터뷰하고 있다.

워싱턴 | AP연합뉴스

토머스가 처음 백악관을 출입한 것은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워싱턴DC에서 활동하는 기자들은 거의 남성이었다. 토머스는 남성 기자들 사이에서 활동하며 매우

정력적이고 공격적인 취재활동을 펼치면서 2010년까지 10명의 대통령이 백악관을 거쳐가는 동안 백악관

기자실을 지켰다. 그는 백악관 브리핑룸 기자석의 맨 앞줄 한복판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지정석을 갖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2009년 토머스의 89세 생일 때는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컵케이크를 들고 백악관

기자실을 찾아 축하를 함으로써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한때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열리는 대통령 기자회견은 “대통령님, 안녕하십니까”라는 토머스의 인사말로

시작돼 “감사합니다, 대통령님”이라는 그의 말로 끝을 맺는 것이 관례이던 시절이 있었다. 토머스는

“언론은 정례적으로 대통령에게 질문할 수 있는 특권을 갖고 대통령에게 책임을 요구할 수 있는 특권을

갖고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레바논 이민 2세인 토머스는 1920년 켄터키주 윈체스터에서 레바논 이민가정 2세로 태어나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1943년 워싱턴 데일리 뉴스에서 수습기자로 언론계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1961년 UPI통신 기자로 백악관에 출입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백악관 브리핑룸

맨 앞줄에 앉아 공격적이고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퍼부으면서 유명세를 탔다. 토머스의 집요한 질문 공세에

시달렸던 한 백악관 대변인은 그의 질문을 ‘고문’에 비유하기도 했다. 토머스의 전투적 질문을 매우 싫어했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일부러 토머스의 질문을 외면하는 것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 8월4일 헬렌 토머스 기자의 89번째 생일을 맞아 컵케이크를 선물하고 있다.

워싱턴 | AP연합뉴스

하지만 그의 치열한 기자정신은 대통령과 백악관 언론 담당자, 동료 기자들의 경외의 대상이기도 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토머스를 두고 “두려움 없는 진실 구현, 치열한 정확성 추구, 정부에 대한 끊임없는

책임 부여 등 미국의 저널리즘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모든 것의 상징”이라고 찬사를 보낸 적이 있다.



토머스는 성적인 장벽이 엄존하던 미국 언론계의 관행을 바꾼 인물이기도 했다. 미국 공영라디오방송 NPR의

데이비드 포큰플릭 기자는 “토머스는 여성이 활동하기 어려웠던 워싱턴DC 기자단의 벽을 허물었다”고 평가했다.

토머스는 실제로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백악관 기자단의 간사를 맡았고, 한때 여성의 가입조차 금지됐던

내셔널프레스클럽의 첫번째 간부가 되는 기록을 남겼다.

중동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토머스는 팔레스타인의 권리를 주장하며 이스라엘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공공연히

드러내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는 2010년 6월 백악관에서 열린 유대인 관련 행사 도중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을

떠나 폴란드나 독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가 거센 여론의 바난을 받았고, 일주일 뒤 허스트 코포레이션의 기자직을

사퇴해야만 했다. 토머스는 그러나 이듬해 버지니아주의 주간지 ‘폴스처치 뉴스프레스’에서 다시 기자로 현역에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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