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사회는 개인의 욕망이 있더라도, 공동체의 목표가 있으니 자기 절제가 됩니다. '그래도 나는 공직자인데…' '그래도 나는 학자인데…'라는 전제가 달리는 거죠. 그런데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에서 공동체 의식이 약해지고 직업적 프라이드가 축소되면서 '얼마나 돈 잘 버냐'로 무게 중심이 옮겨 갑니다. 그렇게 개인적 욕망, 특히 돈에 대한 욕망이 인간을 좌우하는 시대가 열렸고, 그러면서 엘리트들이 체제에 적극적으로 부역할 여지가 커졌죠. 자기 욕망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권력에 빌붙는 것을 부끄럽다고 여기지 않게 된 거예요."
◇ "파시즘, 한국 사회 모든 영역 지배…'무저항' '무권리' 가르쳐 온 대가"

"제가 속한 학계를 예로 들어 보죠. 학계는 결코 민주적인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대단히 권위적이고 획일적이에요. 교수에게 반대 의견을 내세우면 결코 안 됩니다. 질문했다고 따귀 맞은 석·박사들 얘기도 있으니 말 다했죠. 그게 일상입니다.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는 수평적인 관계에 바탕을 둔 토론이 반드시 필요한데, 학계마저 권위적인 풍토에 물들어 있어요. 다른 곳도 마찬가지겠죠. 혹자는 한국 기업에 대해 '조폭 문화가 지배한다'고도 했잖아요. 공감합니다. 그러니 공무원 사회는 오죽하겠습니까."
같은 맥락에서 한국 관료 사회는, 김 소장의 표현을 오롯이 빌리면 "변태적"이다.
"관료주의의 본질은 보신주의예요. 심리적으로 무리한 짓을 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겠다는 것이죠. 그런데 한국의 경우 그것을 넘어섭니다. 일제 군대식으로 상명하복과 일방적인 권위의 지배가 횡횡하는 거죠. 우리 사회에서 어디 팀장이라고 하면 사실상 독재자예요. 좋은 사람이 팀장일 경우는 덜한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면 완전히 깡패가 됩니다. 소위 '장'의 말에 복종해야 한다는 시스템이 공고히 자리잡은 탓이죠. 이는 내부고발자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에서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외국을 보면 내부고발자를 칭찬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우리는 오히려 설자리를 잃게 되잖아요."
이렇듯 권위주의가 득세하게 된 데는 "한국 사회가 '무저항'과 '무권리'를 가르쳐 온 탓"이라고 그는 꼬집었다. 자라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너만 손해다"라는 말이 그 방증이다. "권위주의에 물든 엘리트가 득세하게 된 사회는 결코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 김 소장의 지론이다.
"엘리트가 제 역할을 하고 있다면 한국 사회에서 '종북몰이'가 설자리는 없을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사상 탄압이다' '사상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이러면 안 된다'며 스스로 먼저 저항할 테니까요. 윗사람에게 덤비면 '빨갱이' 소리 듣는 풍토에서는 엘리트가 돼 봤자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어요."
심리학자로서 김 소장이 '사회 건강성'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사회 시스템이 권위적이고 건강하지 않다면 부역자를 구하기가 쉽습니다. 반대로 사회가 정신적으로 건강하면 비뚤어진 체제나 정권에 협력할 사람은 당연히 줄어들겠죠. 우리 사회가 비교적 건강했다면 부역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라는 말이죠. 결국 한국 사회의 최우선 과제는 '정의 실현'에 있다고 봅니다. 사회 정의가 실현되면 사람들은 어떤 것에도 구애 받지 않고 자기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게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