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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가을 여행 이야기 2013년

tiger471 2013. 10. 12. 04:30

사우스 다코타 주는 8,000년전에 인디언들이 이곳에 살면서 주로 사냥을 해서 살던곳인데
1,800년대 부터 동부 백인들이 서부로 이주하면서 밷 랜드근처에 블랙 힐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싸이억스 인디언들과의 전쟁으로 원주민들을 추방해버린 이곳 미주의 모든 땅들이 그렇듯이 인디언들
아니면 멕시칸들과의 전쟁에서 땅을 빼앗아서 살고 있는 백인들만의 세상입니다.

Mount Rushmore에 가기 위해서 아침 일찍 서둘렀습니다.

이곳에 들어가는것도 산을 돌라서 들어가야 하므로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래피드 시티에서 남서쪽으로 가다 보면 안내가 잘 되어 있습니다.

 

Mount Rushmore 은 사우스 다코타 주州에 위치한 산으로, 미국의 4명의 위대한 대통령을 조각한 조각상

(러시모어 국립 기념공원, Mount Rushmore National Memorial)이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북미대륙의

한가운데, 사우스 다코타주와 와이오밍주에 걸쳐있는 블랙힐스라는 산악군이 대평원 속에 우뚝 솟아있습니다.

러시모어 산은 그 중의 하나입니다.

마운트 러시모어에는 자연의 위풍과 인간의 집념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미국역사의 한 페이지가 상징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미국 초대 대통령이고 위대한 민주국가의 탄생을 위하여 헌신한 죠지 워싱턴 대통령 미국의

독립선언문을 기안했고, 루이지애나 지역을 구입해 국토를 넓힌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승리로 미연방을 살렸고, 모든 인간의 자유를 지킨 애브라함 링컨 대통령, 그리고 서부의 자연보호에 공헌이

컸고 파나마운하 구축 등 미국의 위치를 세계적으로 올려 놓은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 등 네 위인의 초상이

산정의 거대한 바위에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로 그 위풍을 과시하고 있다. 조각할 당시엔 다이너마이트로 깎아

내어 못과 망치로 다듬질을 하여 만들었다고 합니다. 러시모어 조각상은 무려 14년(1927년~1941년)이란 시간에

걸쳐 만들어졌습니다.

 


아침이 시작되며 마운트 러쉬모어를 방문 하기로 합니다.



 

 

미국 역대 대통령 네분의 흉상을 산에다 직접 조각하여 만든 네분 대통령을 모신 성지화된 곳입니다.

 

1923년에 Doane Robinson 은 사우스 다코타 역사학회의 책임자 였던 사람인데 산 에다가 조각을

하려는 생각을 해낸 사람입니다.

이분의 노력으로 이곳 산 에다가 대통령들의 흉상을 조가가하는 작업이 시작됩니다.

 

여러 반대의 역경을 거쳐서 1927년6월에 당시 대통령이었던 Calvin Coolidge 가 3주간의 여름 휴가를

이곳에 와서 지내다가 이곳을 여름 백악관으로 정하면서 3개월이라는 휴가를 보내고서 이 산을

둘러보고서 정부 차원의 지원을 발표합니다.

 

이에 예순살의 조각가 Gutzon Borglum 은 1927년 8월부터 14년간을 지내면서 당시 미국에는 경제 공항이

있던 시절이었는데 이 조각가는 인근의 400여명을 고용하여 길을 닦고 작업을 착수합니다.

그 긴 세월동안 침식을 산에서 지낸 조각가의 노력과 인부들의 노력으로 많은 희생자가 있었지만

산에서 조각을위해 제거한 암석 450,000톤의 90%는 다이나마이트로 처리하였습니다.

Borglum 은 1대 12 크기의 모형을 제작하여 모형의 1인치는 1피트로 확대하여 실제 조각 작업을 하였습니다.

다이나 마이트를 사용해야해서 많은 광부들을 고용하였는데 시간당 $ 1.25 은 다른 지하 광부들 보다

많은 임금을 받고 대우를 받는 일을 하였답니다.

 

대통령의 얼굴은 길이가 60 피트이고  6층 높이의 빌딩과 맞먹고  코는 21피트 눈은 11피트이고

입은 18피트나 됩니다.

 

제일 왼쪽은 초대 대통령 죠지 워싱턴이고

 

두번째는 1743년에 태어난 토마스 제퍼슨 입니다.

제퍼슨은 3대 대통령으로 1801년과 1809년에 두번 대통령을 역임합니다.

 

세번재는 26번재 대통령인 디오드르 루즈벨트 입니다. 그는 죽은지 8년밖에 안되어서 여러 역사가들의

여론이 분분한 가운데도 선택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네번재가 16대 대통령으로 암살당한  1860년에 어려운 역경속에서 당선된 에이브래햄 링컨 대통령입니다.

조각가인 Borglumdms 링컨 대통령을 가장 좋아하는 위대한 지도자로 생각하였답니다.

 

 

 

사진촬영을 위해서 넓은 광장을 자연석을 다듬어 편리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곳의 입장료는 $11.00인데 이 티켓은 1년동안 유효합니다.

차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새로히 지어졌는데 주차장 사용료가 되는 것입니다.

 

래피드시티(Rapid City)에서 서남쪽으로 약 25마일 거리의 키스톤(Keystone) 지역에 있는 마운틴

러시모어 국정기념공원(Mt. Rushmore National Memorial)은 미국 건국과 발전에 공헌이 많은 4명의

역대 대통령 얼굴들을 해발 5,700ft높이의 화강암 돌산에 거대하게 조각해 놓은 미국 최고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조지 워싱턴(G. Washington), 독립선언문을 기초하였고

재직 시 프랑스로부터 땅을 사들여(Lousiana Purchase) 영토 확장의 공로가 큰 토마스 제퍼슨(T. Jefferson),

노예해방과 남북전쟁(Civil War)을 승리로 마무리해서 합중국체제를 유지하게 한 애이브라함 링컨(A. Lincoln),

미국의 서부지역에 대한 자연보호에 관심과 공헌이 많았고 미국을 오늘날 세계최강대국의 지위에 올려놓은 테디

루즈벨트(T. Roosevelt) 대통령 각각의 얼굴 높이가 약 60ft 정도이니 실로 엄청나게 큰 조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거대한 얼굴조각 전체를 사진 촬영하려면 멀리 떨어진 입구 정도에서 찍지 않으면 힘들기도 하지만 요즘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현장에서 멋지게 러시모어를 배경으로 한 합성사진을 만들어주고 있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1923년 사우스다코다(S. Dakota)주의 역사학자 로빈슨(Doane Robinson)이 주 의회 상-하원의 합의를 얻고

시작된 마운틴 러시모어의 역사는 덴마크 이민자의 후손으로 아이다호(Idaho)주 출신의 조각가 보글럼

(John Gutzon Borglum:1867-1941)이 그의 나이 60이 다되어가는1925년부터 작업을 시작하여서 폭파작업으로

산을 가르는 공정에만 하루 400개 이상의 구멍을 뚫으며 폭파작업을 하였다고 하는데 공사 기간 중의

인명 피해는 전혀 없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작업의 시작에서부터 완공까지의 공사기간은 총 14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8년간 공사가 중단되었기

때문에 실제 공사 기간은 6년이라고 합니다.

공사가 중단된 8 여년의 기간 동안엔 고갈된 공사비를 모금하기 위해 관계자들이 동분서주하였으며 공사기간 내에

아홉 차례에 걸쳐 불가피한 사정으로 설계를 변경하는 과정을 거치며 4개의 얼굴이 거의 완성될 즈음인 1941년 봄에

보글럼이 심장마비로 사망하였고 돌발적인 그의 죽음으로 전체적인 작업이 일시 중단되었지만 의회에서 추가 비용의

일부지불이 가결되면서 다시 활로가 열려 공사초기부터 아버지를 도와왔던 그의 친아들(Lincoln Borglum)이 자금사정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감독직을 이어받아 7개월의 추가공사를 거쳐 완공하였습니다. 비록 궁극적으로는 당초의 보글럼의

 원래 계획대로는 완성을 보지 못하였지만 2대에 걸친 공사를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이 거대한 조각 사업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원래의 계획으로는 얼굴만 아니라 상반신 전체를 조각하려고 하였고 링컨의 얼굴 뒤쪽에 거대한 기록실을 만들어

그 넓은 벽면에 독립선언문을 비롯한 미국역사의 중요사항들을 새겨 넣기로 했다는데 결국 실행 하지 못하였고,

바위 정상까지 걸어 올라갈 수 있는 계단도 설계되었었지만 이 역시 실행하지 못한 채 끝나 방문객들이 정상과 얼굴

조각에 최대한 접근할 수 없는 아쉬움을 남기고 말았다고 합니다. 현재 이 공원을 관리 운영하는 직원들만이 옛 공사에

사용되었던 그네모양의 의자를 타고 1년에 한번씩 조각 전체를 세밀히 검사하면서 균열이나 손상된 부분을 발견하고

수선하기 위해서 정상에 올라갈 수 있다고 합니다. 비록 원래의 설계대로 완성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으나 처음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이 거대한 공사를 성취한 것은 보글럼과 그의 아들을 비롯한 공사관계자들이 함께 이루어낸

집념의 승리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현대 민주국가의 기반을 닦고 그 발전을 위해 힘쓴 4명 위인들의 조각초상을

바라다보면서 다시 한번 이들의 노고와 집념에 머리를 숙이게 됩니다. 보글럼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예술박물관에

소장된 ‘Mares of Diomedes’를 비롯하여 일생동안 약 170여개의 조각상과 기념물을 제작했다고 하는데 그의 부인과

형제, 또 아들까지 모두 조각 예술가로 활동하였다고 합니다

 

자연의 웅장함과 인간의 집념이 빚어낸 공원의 위대한 조각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절벽 꼭대기에 그런 조각을

만들어 낸 인간 능력의 한계도 생각해보고, 불가능을 뛰어넘는 우리 인간의 의지와 노력 등등 참으로 많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한편, 폭파작업으로 시작된 공사 때문에 떨어져 나간 50만 톤에 이르는 암석 부스러기들이 지금도 생생하게 쌓여 있는 돌

틈사이 속에서 뿌리를 내린 소나무들이 계속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볼 수도 있어 언젠가는 푸른 나무가 가득한 숲 위로 우뚝

솟아있을 거대한 조각상의 모습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끝으로, 여름철에 이곳을 방문하는 분들이라면 해가지기 전

최소 3시간 정도 전에 도착해서 공원전체를 구경한 후 계속 이어지는, 조명을 이용한 기막히게 멋진 야경의 모습도 함께

구경하신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라 권해드리고 싶고 또 조각상이 바라보이는 근처의 숙소에서 주무시게 된다면 연회색

조각상이 아침 햇빛을 받으며 서서히 찬란한 빛을 발하는 엄숙한 장면도 구경해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 방문지가 이곳에서 20여마일 떨어진곳에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조각을 하는 곳으로

달려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