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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25일 오전 11:55

tiger471 2013. 7. 25. 12:39


군인 전두환…대통령 전두환, 그리고…‘전두환 추징법’

검찰은 지난 16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자택에서 고가의 미술품 등 재산에 대한 압류를 집행했다. 1600억원대에 이르는

미납 추징금을 환수하기 위해서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천문학적인 비자금 규모가 세상에 드러난 것은 16년 전이다. 법원은 1997년

두 사람의 비자금이 기업인들에게 받은 뇌물로 형성된 것이라며 추징해 국고로 귀속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노 전 대통령은 추징금 2628억원 중 2397억원을 납부해 231억원을 미납했고, 전 전 대통령은 2205억원 중 1672억원이나

미납했다.

전 전 대통령은 “비자금을 이미 정치자금으로 다 써버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16년 동안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을

환수하기 위해 숨바꼭질을 벌여왔다.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규모는 언제, 어떻게 알려졌고 국가는 이 비자금을 어떤 과정을 거쳐서 국고에 귀속하기로 했을까.

퇴임 이후 전 전 대통령의 백담사 도피와 연희동 복귀, 5·18과 12·12의 진상규명과 단죄를 놓고 벌인 법리논쟁, 비자금 폭로,

5·18 특별법 제정, 검찰 수사와 구속, 옥중단식, 대법원 판결과 사면, 그리고 추징금 환수를 위한 지난한 과정과 ‘29만원

발언’까지, 경향신문 과거 보도를 통해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환수 과정을 정리했다.

■12·12, 5·18 잇따른 ‘불기소’…‘정치검찰’ 비판

전 전 대통령은 퇴임 뒤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되고 5공 비리에 대한 진상조사특위가 구성되자 1988년 말 연희동

사저를 포함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며 대국민사과를 하고 강원도 인제 백담사로 숨어들어갔다. 은둔 중

국회의 5공 특위 청문회에 출석해 “잘못이 없다”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 국회의원이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명패를 집어던졌던 사건이 이 때 있었던 일이다. 그는 2년 뒤 재산 환원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채 서울 연희동

사저로 복귀했다. 이후 그는 한동안 비교적 편안한 나날을 보냈다. 측근들과 부지런히 만나면서 정치 재개를

모색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4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단죄해야 한다는 여론이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에 대한 공소시효가 1년 앞으로 다가오자 5·18 관련

단체들은 전·노 전 대통령 등을 내란죄로 검찰에 고발했다. 12·12사태에 대한 고소고발도 잇따랐다.

같은 해 10월 검찰은 12·12사태를 군사반란이라고 결론내렸다. 하지만 “국론분열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전·노

전 대통령 등에게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경향신문은 당시 “단죄 없는 유죄”라며 “신군부 세력이 12·12사태 이후 구축한 세상은 현재까지도 굳건한 ‘현실’로

자리잡고 있고 검찰이 그 벽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라고 분석했다.



12·12사태 고소고발사건을 수사해온 서울지검은 29일 이 사건을 당시 신군부세력이

치밀한 사전계획에 따라 군권을 탈취한 군사반란행위로 결론지었다. 조준웅 서울지검

1차장은 이날 최종 수사결과발표를 통해 “12·12사태 가담자들의 군사반란행위는

인정되나 그동안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로 등을 참작, 전원 불기소처분키로 했다”고 밝혔다.

(중략)검찰은 이들을 불기소처분한 것과 관련해 “군사반란행위를 관용하는 것은 정의에

반하고 국민의 법감정과도 어긋난다는 주장이 있으나 피의자들을 기소할 경우 재판과정에서

과거사가 거론되고 법적인 논쟁이 계속돼 국론분열의 우려가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경향신문 1995년 10월30일자 1면 보도)


검찰은 다음해인 1995년 7월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 전 대통령 등의 행위에 대해서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내란죄에 해당되는지 따지지 않고 불기소 처분(공소권없음)했다.

당시 경향신문은 “검찰은 15년 전 국민들의 귀중한 생명을 앗아간 유혈사태를 고도의 정치적인 고려가 담긴

‘사법적인 판단 중지’로 마무리지었다. 한국 검찰은 사법기관이 아닌 ‘정치기관’이라는 속설이 다시금 입증되는

대목이다”라고 비판했다.



5·18 관련 고소·고발사건을 수사해온 서울지검 공안1부는 18일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포함,

피고소·고발인 58명 전원에게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처분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발표문을

통해 비상계엄 전국확대와 정치활동금지, 국보위 설치운영 등 당시 일련의 조치는 정치적

변혁과정에서 기존 통치질서를 대체하고 새로운 헌법질서를 형성하는 기초가 됐다는 점에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1995년 7월19일자 1면 보도)


12·12에 이어 5·18과 관련된 혐의에서까지 검찰이 전 전 대통령 등을 불기소하자 반발이 잇따랐다.

5·18 관련단체들은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반발해 항고했으나 모두 기각됐다. 시위대가 서울지검에

난입해 검찰의 결정에 항의하는 일도 벌어졌다. 대학생들이 동맹휴업을 벌이고 교수들이 5·18 관련

자를 처벌할 수 있게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서명운동을 벌였다.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 잇따라 구속

이 시기 서석재 당시 총무처장관, 박계동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 등의 폭로로 전·노 전 대통령이

수천억대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여론은 더욱 들끓었다.

검찰은 즉각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에 대한 수사를 시작해 그를 구속하기에 이른다.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을 수사중인 대검 중수부는 16일 오후 노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혐의로 구속했다.

헌정사상 전직 대통령이 재임 중의 범죄로 구속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노씨는 91년 5월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으로부터

진해해군잠수함기지 건설공사를 수주받게 해준 데 대한 사례비조로 1백억원을 받는 등 30개 대기업 총수들로부터 기업경영에

 대한 선처 등의 명목으로 모두 2358억9600만원을 받아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향신문 1995년 11월17일자 보도)


노 전 대통령이 구속되자 “이번에는 정말로 12·12와 5·18의 진상을 밝히고 전두환과 노태우를 단죄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 등을 처벌하기 위해 “역사 바로세우기”를 천명하고 5·18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국회에 주문했다. 검찰도 서울지검에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고 12·12와 5·18에 대한 재수사에 들어갔다.

검찰은 재수사를 시작한 직후 전 전 대통령을 불러 조사하려고 했지만 그는 응하지 않았다.

검찰의 소환장을 받은 그는 소환에 응하는 대신 1995년 12월2일 연희동 자택 앞에서 그 유명한 “골목길 성명”을

발표했다. “나에 대한 재수사는 정치보복이므로 소환에 응할 수 없다”는 내용이 성명의 골자였다.






전씨는 이날 연희동 자택 앞에서 발표한 대국민 성명을 통해 “대통령의 지시 한마디로 이미 종결된

사안에 대해 수사를 재개하려는 검찰의 태도는 진상규명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다분히 현 정국의

정치적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검찰의 소환요구 및 여타의 어떤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중략) “내가 국가의 헌정질서를 문란케 한 범죄자라면 이러한 내란세력과 야합해온

김대통령 자신도 이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순리”라고 5·18 특별법 제정에 강력히 반발했다.

(경향신문 1995년 12월3일자 1면 보도)


그는 성명 발표 후 검찰 소환에 불응하고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가 버린다. 여야와 시민사회는 “자신의

죄과를 망각한 오만불손한 행위”라고 반발했다. 검찰은 물러서지 않았다. 곧바로 법원에서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은 뒤 합천으로 수사관을 급파했다. 호기롭게 ‘골목길 성명’을 발표한 지 하루만에 그는 합천에서 압송돼

구속되는 처지가 됐다. 그는 안양교도소에 수감돼 내란 혐의와 은닉 비자금에 관련한 수사를 받았다.

 

12·12 및 5·18 사건을 수사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2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조사불응 입장을 밝힘에 따라 전씨에게

군형법상 반란수괴 등 6개 죄목을 적용, 법원으로부터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검찰은 이날 밤 12시쯤 김상희

주임검사 지휘 아래 서울지검 이수만 수사1과장을 팀장으로 하는 9명의 영장집행팀을 전씨의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급파해 3일 오전중 전씨를 승용차편으로 압송, 안양교도소에 구속수감키로 했다. 검찰 고위관계자는 이날 “전씨의

발언으로 개전의 정이 없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난 만큼 검찰로서는 필요한 적법절차를 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1995년 12월3일자 1면 보도)


구속된 전 전 대통령은 ‘단식 투쟁’에 돌입한다. 시민들로부터 “자기가 양심수나 독립투사인 줄 안다”는 냉소가 쏟아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18일 동안 단식을 하던 그는 기소되는 날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투약과 식사를 모두 거절하며

 9일 동안 단식을 더 이어갔다.

당시 그가 입원했던 병원에는 “전두환에게 왜 약과 먹을 것을 주느냐”는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한편 전 전 대통령과 관련된 웃지 못할 사건사고도 전국에서 일어났다. 그를 닮았다며 폭행한 사건, 그를 찬양한다는 이유로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 등이 당시 신문 사회면에 잇따라 실렸다.

울산 남부경찰서는 3일 양모씨(50·부산 부산진구 초읍동)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

양씨는 이날 오후 10시30분쯤 택시를 타고 부산 방면으로 가다 울산시 남구 신정동 공업탈 로터리에서 합승한

승객 전모씨(29)에게 “구속된 전두환과 너무 닮았다. 너도 전두환과 똑같은 놈이어서 내가 응징하겠다”며 울산시

울주구 웅촌면 웅촌파출소 앞에서 전씨를 끌어내려 폭행한 혐의. (경향신문 1995년 12월5일자 23면)

경기 안산경찰서는 21일 술자리에서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찬양하는 사람을 구타해 숨지게 한 조모씨

(43·안산시 원곡동)를 상해치사 혐의로 긴급 구속. 조씨는 이날 새벽 3시쯤 안산시 신길동에서 황모씨(60)등

2명과 함께 술을 마시다 황씨가 전노씨를 동정하며 노태우전두환 만세 라고 외치자 시비끝에 황씨를 주먹과

발로 마구 때려 숨지게 한 혐의. (경향신문 1995년 12월22일자 23면)


국회는 같은 해 12월20일 전·노 전 대통령의 재임기간 동안 12·12와 5·18의 내란죄 공소시효를 정지시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5·18특별법을 통과시켰다.

두 사람은 처벌을 피하기 위해 온갖 힘을 다했다. 헌법재판소에 검찰의 수사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까지 냈다.

헌재는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각하처분했다. 전 전 대통령과 함께 처벌받을 처지가 된 장세동

전 안기부장 등도 5·18특별법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지만 헌재는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처벌은 피할 수 없는 길이 됐다.

검찰 수사는 비자금 조성 의혹과 12·12관련 혐의, 5·18관련 혐의 등 세 갈래로 이뤄졌다. 검찰은 같은 해 12월22일

“12·12사건 당시 전두환과 노태우 등이 사전 공모나 대통령 재가 없이 육군참모총장을 불법체포하고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무력진압했다”며 두 사람을 군형법상 반란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이듬해인 1996년 1월13일 뇌물을 받아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전 전 대통령을 추가기소했다.

검찰은 또 같은 해 1월24일 5·18 사건과 관련해서 전 전 대통령을 내란목적살인 등 5개 혐의로, 노 전 대통령을 내란

중요임무종사 등 4개 혐의로 재차 기소했다.

수의를 입고 법정에 서는 신세가 되었음에도 전 전 대통령은 오만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해서 “모른다,

안 했다”며 혐의를 부인하기 바빴다. 그의 변호인단이 “야간재판에 응할 수 없다”, “일주일에 두 번씩 공판을

진행하지 말라”며 재판을 거부하고 퇴정하는 일도 여러 차례였다.

같은 피고인인 노 전 대통령에게 법정에서 반말을 사용하는 모습도 보였다. 반면 노 전 대통령은 법정에서

전 전 대통령에게 깍듯이 존대말을 썼다.

■사형 선고와 감형, 사면까지

1심 법원은 전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노 전 대통령에게는 22년6월형을 선고했다.

각각 2000억대의 추징금도 선고했다.


12·12및 5·18사건과 비자금사건으로 병합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사형이,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징역 22년6월이

각각 선고됐다.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는 26일 오전 열린 12·12및 5·18사건 선고공판에서 이같이 선고하고 나머지 피고인 13명에게는

징역 10~4년씩의 실형을 내렸다. (중략) 재판부는 비자금사건과 관련, 전씨에 대해 2259억 5000만원 추징을, 노씨에게는

2838억9600만원 추징을 별도로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보안사령관으로서 계엄사령부정식 지휘계통을 배후조종해 광주유혈진압을 지시했고 계엄군과

시위대가 격앙돼 있는 상황에서 자위권발동을 배후지시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발포명령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며

내란목적살인 등 전씨에게 적용된 10개죄목을 모두 인정했다. 노씨에 대해서는 반란·내란 중요임무종사죄 등 9개

죄목이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경향신문 1996년 8월27일자 1면 보도)


당시 경향신문은 1심 선고공판 스케치 기사를 통해 선고 당시 두 사람의 표정을 전했다. “전 피고인은 흠칫하면서도

이미 모든 것을 예상한 듯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창백해진 얼굴이었다. 노 피고인의 양쪽 귓불도 벌겋게 달아올랐다.”

(경향신문 1996년 8월27일자 23면 보도)

전 전 대통령은 판결 다음날까지도 “현 상황에서는 2심도 기대하기 힘들다. 1심 재판부와 2심 재판부가 다를 바 있겠느냐”며

항소 포기의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경향신문 1996년 8월28일자 보도). 하지만 며칠 후 그는 항소했고, 2심 법원은 1심

선고보다 감형해 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노 전 대통령에게는 징역 17년을 선고했다.

추징액도 각각 54억, 210억원씩 줄였다.

대법원은 1997년 4월17일 2심 법원이 선고한 형을 확정했다. 전 전 대통령에게는 무기징역형과 추징금 2205억원이,

노 전 대통령에게는 징역 17년형과 추징금 2628억원이 각각 선고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이, 노태우 전대통령에게는 징역 17년형이 최종 확정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장 윤관 대법원장·주심 정귀호 대법관)는 17일 12·12 및 5·18사건 상고심 선고공판에서 비자금사건과 병합된

전·노 피고인과 군사반란 및 내란죄로 기소된 피고인 15명 전원에 대해 검찰과 변호인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이로써 95년 10월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으로 시작된 역사바로세우기 작업은 수사 착수 1년6개월만에 모두

마무리됐다. (경향신문 1997년 4월18일자 1면 보도)


하지만 대법원 선고가 나오기도 전부터 “사면론”이 솔솔 피어올랐다. 대법원 선고 사흘 전인 4월14일 경향신문은

“청와대와 신한국당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적극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당시 경향신문은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두 사람의 사면문제에 대한 실무적 검토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며

“김(영삼) 대통령이 결자해지해야 한다는 것이 다수의견”이라고 전했다. 결국 그 해 대선이 끝난 뒤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자는 전·노 전 대통령에 대한 특별사면 및 복권을 단행했다.






12·12 및 5·18 사건과 전직대통령 비자금 사건에 연루돼 수감중이던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포함한

19명이 대통령의 특별사면에 따라 22일 석방됐다.

(중략) 한편 검찰은 전·노씨에게 각각 부과된 추징금 2205억원과 2628억원이 이번 특별사면에서 제외됨에 따라

3년 시효를 연장해 끝까지 추징키로 했다. (경향신문 1997년12월23일자 1면 보도)
하지만 두 사람에게 각각 부과된 2000억대의 추징금은 사면대상에서 제외됐다.

■검찰과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 숨바꼭질’, 그리고 “전재산 29만원”

이때부터 검찰과 전 전 대통령은 본격적인 ‘추징금 숨바꼭질’을 벌인다. 1997년 말까지 검찰은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

2205억원 중 14%인 312억9000만원을 추징했다. 하지만 2000년까지 3년동안 추가추징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전 전 대통령의 기명재산은 연희동 사저 별채와 벤츠 승용차, 콘도 회원권 등 10억원대에 불과했다. 검찰은 “숨겨진

비자금을 찾지 않으면 이 정도 재산을 추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봤지만 추징 시효인 3년 안에 추가추징을 하지 않으면

추징시효를 연장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검찰은 전 전 대통령의 기명재산을 하나씩 압류해 경매에 부쳐 강제처분하는 방법으로 시효를 연장했다.

2000년 10월 경매에 넘긴 그의 1987년식 벤츠 승용사는 9900만원에 낙찰됐다(경향신문 2000년 10월11일자 19면 보도).

2000억원에 가까운 추징금 규모에 비하면 미미한 액수였다. 2003년에는 또 추징시효 연장을 위해 그의 자택에서 나온

52인치 TV와 진돗개 등 살림살이들을 몽땅 경매에 부쳤다(경향신문 10월3일자 23면 보도). 꼭꼭 숨겨둔 비자금을 추징하지

못하고 ‘푼돈’만 환수해온 것이다.

희대의 명언 “전재산은 예금 29만원” 언급은 바로 이 추징과정에서 나왔다. 전 전 대통령은 2003년 4월28일 서울지법

서부지원에서 열린 재산명시 심리재판에서 ‘자신의 전 예금재산’이라며 29만원이 들어 있는 예금통장을 제출했다.

판사가 “예금채권이 29만원 정도만 기재돼 있고 보유 현금은 하나도 없다고 나와 있는데 사실이냐”고 묻자 그는

“내 명의로 된 현금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당시 판사는 “그러면 대체 무슨 돈으로 골프를 치고 해외여행을 다니느냐”고

전 전 대통령을 힐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에도 ‘찔끔찔끔 추징’은 계속됐다. 검찰은 전 전 대통령 소유의 서울 강남 땅을 찾아내 1억원에 낙찰시켜 환수했고, 심지어는

은행채권추심 방법으로 4만7000원의 푼돈을 추징하기도 했다. 추징시효를 계속 연장하기 위해서는 소액이나마 추징해야 했기 때문이다.

비난을 피해가기 위해 그가 먼저 나서서 추징금을 납부하기도 했다. 그는 2010년 10월 “강연료 소득이 생겼다”며 추징금 미납액의

일부인 300만원을 검찰에 납부했다. 검찰 관계자는 “추징 시효가 끝나면 더 큰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시효 마감이 임박해오자

자진해서 낸 것이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이로써 추징금 납부 시효는 2013년 10월10일로 연장됐다.

(경향신문 2010년 10월15일자 12면 보도)

■‘전두환 추징법’ 통과, 재산 압류… 이번에는?

또다시 추징 시효 만료가 다가온 2013년, 검찰은 추징금 환수 태스크포스를 꾸렸다. 이때까지 전 전 대통령은 추징금 2205억원

중 76%인 1672억2651만원을 미납한 상태였다. 그리고 6월,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에 의해

그의 장남 전재국씨가 해외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해외은행 비밀계좌에서 돈을 관리해 온 것이 밝혀졌다.

이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그의 비자금이 관리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정치권은 은닉재산 환수 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얼마 뒤인 6월27일에는 공무원이 불법 취득한 재산에 대한 추징시효를

현행 3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고 추징 대상을 제3자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공무원범죄몰수특례법’ 개정안(일명 ‘전두환 추징법’)

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에 의해 그의 미납 추징금 환수 시효는 2020년 10월까지 연장됐다.

지난 16일 검찰은 전 전 대통령의 연희동 자택에 수사관을 보내 고가의 미술품 등에 대해 재산압류 처분을 했다.

전재국씨 소유의 출판사인 시공사, 경기 연천의 허브빌리지 등 자녀들 소유의 회사 및 자택에 대해서는 압수수색을 벌였다.


검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82)의 차명재산으로 의심되는 자녀 명의의 부동산 등 100억원가량의 자산을 찾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 재용씨는 검찰의 미납 추징금 집행이 본격화되자 최근 서울 이태원동에 있는 수십억원 상당의

고급빌라를 매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 ‘전두환 추징금 집행’ 전담팀은 16일 서울 연희동 전 전 대통령의 집에 검사와

수사관 등 7명을 보내 미납 추징금 집행을 위한 재산압류 처분을 했다. (중략)검찰은 재국씨가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설립한 ‘블루아도니스 코퍼레이션’을 통해 거액의 차명재산이 해외로 빠져나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재국씨 및 시공사의

외환거래 내역 등을 추적하고 있다. (경향신문 2013년 7월17일자 1면 보도)

16년에 걸친 검찰 전두환의 추징금 숨바꼭질이 이번에는 끝날 수 있을까. 당사자인 전 전 대통령은 아직 이렇다 할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순자 여사 측 변호인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검찰이 30억대 연금예금을 압류해 당장 이달부터 생활이 어렵다”고 말한 것이 전 전 대통령

측이 내놓은 입장의 전부다. 1997년 대법원에서 2205억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은 그는 남은 재산이 없다며 아직까지 1672억원의 추징금을

내지 않고 있다. 추징금 환수 시효는 2020년까지 7년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