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로 함께하는 뮤직
기타로 떠나는 로큰롤 뿌리 찾기
엘리야 왈드(Elijah Wald)라는 대중음악 평론가 겸 연구자의『How The Beatles Destroyed Rock 'n' Roll』이란 책이 있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어로 소개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책인데, 도발적인 제목에 비해 책의 내용은 부제-미국 대중음악에 대한 대안적 역사(An Alternative History of American Popular Music)처럼 다소 점잖은 편이다. 그 내용인즉, 대중음악 연구자, 평론가, 팬들이 놓치고 있는(혹은 일부러 흘려보내려 하는) 진짜 음악의 역사 서술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슈퍼스타와 히트 앨범 계보도로 이뤄진 대중음악 역사의 행간에 저류하는 음악들의 흐름을 뿌리부터 되짚어봤다는 얘기다. 록큰롤은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나 비틀즈(The Beatles), 척 베리(Chuck Berry) 같은 초인/영웅들이 '짜잔~!'하며 만든 것이 아니라, 스윙 재즈, 랙타임, 점프 블루스, 로커빌리, 블루그래스, 리듬 앤 블루스, 부기우기, 서프 뮤직 등의 면면한 흐름과 이들 사이에서 꾸준히 이뤄졌던 이종교배의 역사가 폭발한 결과란 거다. 누구나 알고 있는 얘기라고? 맞다. 하지만 누구도 로큰롤을 말할 때, 루이스 조던(Louis Jordan)이나 빌 먼로(Bill Monroe)를 뿌리로 거론치 않는다. 심지어 연구자나 평론가라는 사람들도 안전하고 편안한 비틀즈의 그늘과 몇 마디 수사("로큰롤은 로커빌리와 리듬 앤 블루스의 만남이다"라는 식의) 아래로 숨기 바쁘다.
Setzer Goes Instru-Mental
Brian Setzer | 2011.08.02
Blue Moon Of Kentucky
“KING OF ROCK’N ROLL” Brian Setzer 5년만의 솔로 앨범! 솔로 기타의 완전무결한 인스트루멘털 앨범 2011년 대망의 Brian Setzer의 솔로 새 앨범이 출시되었다. 2006년의 명작「13」이래, 약 5년만이 되는 솔로 앨범은 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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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웬 록큰롤의 역사 타령이냐고? 바로 이 앨범 [Setzer Goes Instru-MENTAL]과 앨범의 주인공 브라이언 세처(Brian Setzer)의 음악세계를 제대로 즐기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뽀얀 먼지 속에 숨은 대중음악 역사 깊이 숟가락을 찔러 넣어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 앨범은 브라이언 세처의 30년 넘는 음악 경력을 통해 처음으로 선보인 연주 앨범이다. 11곡의 수록곡 중 절반에 가까운 5곡이 고전을 소환한 것인데, 원곡의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세처 스타일로 잘 버무려 놓은 모양새이다. 덕분에 고전과 세처의 오리지널 곡은 행복한 동거에 성공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확인 가능한 성공 요인은 철저하게 기타에 중심이 맞춰진 악기 구성이란 이유다. 양념처럼 들어간 비브라폰('Intermission')과 곡 중간 힘찬 여성 코러스의 제목 외치기나 짧은 스캣('Go Go Gozilla'와 'Far Noir East')을 제외하면 업라이트 베이스와 간략한 구성의 드럼과 기타의 트리오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기타 연주로 방점이 가면서 신-구 작품 / 장르적 다양성이 자연스레 흐려진 것이다. 세처가 추구해온 온고지신 음악 인생의 기타 연주 버전이라고나 할까?
1 Intermission Brian Setzer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플레이리스트에 담기 MP3BGM
2 Go-Go Godzilla Brian Setzer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플레이리스트에 담기 MP3BGM
3 Far Noir East Brian Setzer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플레이리스트에 담기 MP3B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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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세처는 1979년, 삐죽거리는 머리와 구멍난 티셔츠를 입고 로커빌리와 펑크의 경계를 짓이기는 음악으로 무장한 스트레이 캣츠(The Stray Cats)의 리더로 음악계에 등장했다. 밴드 결성 3년 만에 영국을 시작으로 고향인 미국까지 각종 차트를 융단폭격하며 로커빌리 리바이벌 붐을 이끌었다.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출신의 로버트 플랜트(Robert Plant)가 이끈 알앤비-점프 블루스 프로젝트 허니드리퍼스(the Honeydrippers)의 투어에 기타리스트(스튜디오 앨범은 지미 페이지(Jimmy Page)와 제프 벡(Jeff Beck) 등이 담당)로 참여하면서 고전 스타일 연주의 젊은 고수로 등극하기에 이르렀다. 틈틈이 빅밴드 스윙의 대가들의 음악을 들으며 록큰롤의 뿌리를 캐가던 세처는 1990년대 초반 L.A. 클럽가에 17인조 빅밴드를 이끌고 브라이언 세처 오케스트라(the Brian Setzer Orchestra)로 나타나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1990년대 후반을 강타한 리트로 스윙 붐을 이끌었던 그는 2005년 엘비스 프레슬리 팬들의 순례지가 된 선 레코드(Sun Records) 1층 녹음실(당시에도, 지금도 다시 엘비스 특별 전시실로 쓰이고 있는)에 녹음 장비를 들여놓고 전설 속, 그러나 엘비스 프레슬리의 아우라 그늘에 묻혀있던 선 레코드의 과거 노래들을 끄집어냈다.
브라이언 세처의 디스코그래피는 엘리야 왈드가 글로 제기했던 문제의식-로큰롤은 어떤 한 천재가 아니라 수많은 선대 연주자들이 영향을 주고받는 가운데 탄생했다는-을 소리로 구현해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첫 연주 앨범의 첫 곡으로 선보이는 노래는 'Blue Moon Of Kentucky'다. 빌 먼로의 1946년 작품으로 엘비스의 목소리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은 노래다. 세처는 블루그래스 스타일의 원곡에 충실하면서도 통통 튀는 재즈의 뉘앙스를 심어놓은 연주를 들려준다. 현재의 모습만 보고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당시(193,40년대) 재즈와 블루그래스, 블루스는 기타 코드 보이싱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을 주는 장르였다. 이 같은 사실은 레스 폴(Les Paul)같은 명인들의 증언으로 이미 잘 알려진 내용임에도, 우리는 1930년대를 '재즈=아프리카계 미국인 음악 / 블루그래스=유럽계 미국인 음악'의 단절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곤 한다. 알면서도 애써 무시하는 이러한 숨겨진 진실을 세처는 연주로 증명해내고 있다. 이어 존 피자렐리(John Pizzarelli)를 연상시키는 기민하고도 정교한 연주가 빛나는 레이 노블(Ray Noble)의 1938년 작 ‘Cherokee’이 이어진다. 세처의 노림수는 분명하다. 재즈 고전 'Cherokee'의 솔로라인과 블루그래스 고전 'Blue Moon of Kentucky'의 멜로디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관계라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1 Blue Moon Of Kentucky Brian Setzer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플레이리스트에 담기 MP3BGM
2 Cherokee Brian Setzer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플레이리스트에 담기 MP3B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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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Be-Bop-A-Lula'는 원곡(Gene Vincent가 부른)의 멜로디에 충실한 로커빌리 스타일로 구성되어 있다. 1950년대를 연상시키는 빈티지한 톤이 최신 녹음 기술을 통해 놓치는 소리 없이 충실하게 전달되고 있는데, 덕분에 당시의 음악팬들이 즐겼던 사운드가 얼마나 생생하고 짜릿했을지 가늠해볼 수 있다. 이어지는 블루그래스 고전 'Earl's Breakdown'은 기타가 아닌 밴조로 리듬을 연주하고, 전기 기타와 밴조 솔로를 오버더빙해 놓았다. 앨범 커버에 그레치 G-6120, 깁슨 ES-335 등과 함께 밴조를 그려 넣은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세처가 즐겨 연주하던 'Sleepwalk'나 'Harlem Nocturne' 같은 빅밴드 스윙 시대의 무드 넘치는 발라드를 연상시키는 'Far Noir East'과 'Intermission' 역시 그가 음악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바가 무엇인지 잘 드러난다.
2011년 여름 미국서 개봉한 영화 [Soul Surfer] 수록곡이기도 한 'Go Go Godzilla'는 과거 벤처스(The Ventures)나 딕 데일(Dick Dale)의 서프 뮤직 연주곡들에 대한 오마주다. 기타 한 대로만 녹음한 'Hillbilly Jazz Meltdown'는 곡의 뼈대를 제외하면 녹음실에서 'Blue Moon Of Kentucky'를 떠올리며 즉흥으로 연주한 것이라 한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헤비메탈이 아니라도 불꽃 튀는 기타 솔로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연주다. 서프 스타일의 'Hot Love'는 말 그대로 뜨거운 연주가 담겨있는데, 업라이트 베이스와 단순한 드럼, 하프 솔리드 바디의 기타로만 만들어냈음에도 박력으로 가득한 사운드가 인상적이다. 앨범은 고리타분한 옛 시절에 대한 재현인 것 같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그것은 최고의 연주력을 가진 세처의 손을 거쳤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모든 소리의 역사를 이해하는 세처의 톤 감각과 프로듀싱 덕분이기도 하다.
비틀즈를 팝과 로큰롤의 꼭지점으로 생각하는 세대에게 비틀즈 이전 음악(스타일)으로 들려주는 로큰롤의 대안적 역사서와 같은 앨범이다. 케케묵은 지루한 노래일까 미리 긴장할 필요는 없다. 소박하지만 정말 기분 좋아지는 즐거운 소리로 가득한 신나는 앨범이니까. 그리고 실은 브라이언 세처도 나와 이 글을 읽고 있을 대다수처럼 비틀즈 이후 세대(1961년 생)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