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연

2013년 6월 19일 오후 12:24

tiger471 2013. 6. 19. 12:35



가슴 저리는 러시아 거장의 파란의 삶

  28∼30일 무대 오르는 발레 ‘차이콥스키’
늦게 결혼한 아내와 불화가 불행의 시작
분신 내세워 내면의 차이콥스키 드러내
극중 분신과 아내, 파멸의 길로 빠뜨려
우산 든 남녀 무용수들의 군무 환상적
남성미 발산하는 발레리노의 몸짓 볼만
“창작의 고통으로 신경쇠약에 걸린 차이콥스키의 괴로움을 좀 더 극적으로 표현해 볼까요.”


1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내 국립발레단(단장 최태지) 연습실. 28일부터 무대에 오르는 발레 ‘차이콥스키:삶과 죽음의 미스터리’ 공연을 앞두고 무용수들의 막바지 연습이 한창이다. 러시아 대표 작곡가 차이콥스키(1840∼1893)의 불행한 삶을 발레로 형상화한 이 작품은 1993년 9월 러시아에서 초연한 이래 20년 가까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기자가 미리 본 ‘차이콥스키’의 관람 포인트를 소개한다.

발레 ‘차이콥스키’ 2막의 한 장면. 차이콥스키 역 이영철(왼쪽)이 아내 밀류코바 역 고혜주와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고 있다.

◆차이콥스키, 얼마나 불행했기에…

먼저 역사적 사실부터 되짚을 필요가 있다. 차이콥스키는 1877년 37살의 늦은 나이에 제자 밀류코바와 갑자기 결혼했다. 서른이 넘도록 혼자인 차이콥스키를 놓고 ‘동성애자’라는 추측이 파다할 때라 소문을 잠재우고자 일부러 결혼을 서둘렀다고 의심하는 이가 많았다. 실제로 차이콥스키는 밀류코바를 전혀 사랑하지 않았고, 이는 결국 불행의 단초가 됐다.

차이콥스키의 재능을 아낀 폰멕 부인이 물심양면으로 후원하지만 그의 상처까지 치유하진 못한다. 차이콥스키는 차츰 술과 도박에 빠져들고,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밀류코바는 다른 남자와 어울린다. 아내를 혐오한 차이콥스키는 자살까지 시도했다. 결국 차이콥스키는 고통과 후회 속에 삶을 마감하고, 밀류코바는 정신병원에서 여생을 보낸다.

발레 ‘차이콥스키’는 주인공 차이콥스키와 그의 분신을 나란히 등장시킨다. 분신은 아내를 미워하며 결혼을 끝장내고 싶어하는 차이콥스키의 내면을 상징한다. 주변의 눈치를 보며 자기 욕망을 솔직히 드러내지 못하는 차이콥스키는 늘 분신과 다툰다. 극중에서 분신은 밀류코바와 더불어 차이콥스키를 파멸의 길로 몰아넣는 역할을 한다.

발레 ‘차이콥스키’ 2막 막바지의 장면. 차이콥스키 역 이영철(아래)과 그의 분신 역 정영재가 격렬히 다투는 가운데 차츰 파국이 찾아든다.
국립발레단 제공

 


◆눈여겨봐야 할 주요 장면은

1막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장면은 우산을 든 남녀 무용수들의 군무다. 차이콥스키가 예전 가장 좋았던 때를 회상하는 대목이다. 아름다운 춤과 화려한 무대장치가 어우러져 환상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하지만 이 장면에 이어 곧바로 차이콥스키는 창작의 고통에 빠져든다.

1·2막을 통틀어 차이콥스키와 분신의 대결이 무대를 압도한다. 이들의 갈등은 근육질의 두 발레리노가 서로 거칠게 몸을 부딪치거나 상대방의 신체에 괴로움을 가하는 극단적 형태로 표현된다. 여성 관객은 무대 위에서 거침없이 남성미를 발산하는 발레리노들의 몸짓에 매력을 느낄 만하다.

2막에선 밀류코바와 차이콥스키의 애증이 두드러진다. 남녀 무용수가 다투듯 서로 떠밀다가도 아직 미련이 남았는지 도로 잡아당기는 모습에서 짙은 처연함이 묻어난다.

차이콥스키 역은 이영철·이동훈, 분신 역은 정영재·박기현, 밀류코바 역은 박슬기·이은원, 폰멕 부인 역은 유난희·신혜진이 더블캐스팅됐다. 러시아의 거장 안무가 보리스 에이프만(67)이 한국인 무용수의 몸을 통해 러시아 발레의 진수를 표현한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28일부터 30일까지 사흘 동안 총 4차례 공연 한다.